완벽했던 준비, 막상 내려오자마자 무너졌다
나는 준비된 귀촌인이었다. 1년 동안 책을 읽고, 블로그 후기를 보고, 관련 강의도 들었다. ‘귀촌은 무턱대고 해선 안 된다’는 말에 수없이 공감하며, 실패하지 않기 위해 꼼꼼히 계획했다. 주거지는 어디가 좋을지, 농사는 배워야 할지, 지역 커뮤니티는 어떤 성향인지까지 따져가며 준비한 시간만 꼬박 12개월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도시 생활을 정리하면서도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기대가 컸다. 시끄러운 차 소리 대신 바람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는 삶, 사람 사이 부대낌 없이 조용히 흙과 함께 살아가는 삶, 매일을 자연 속에서 보내며 스스로 치유받는 그런 일상을 꿈꿨다.
나는 인프라가 적당히 갖춰진 농촌 지역을 선택했고, 주택도 미리 계약했다.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줄이기 위해 초반에는 조용히, 먼저 다가가지 말고 관찰부터 하자는 나름의 전략도 세웠다. 이 정도 준비라면 적어도 초반 6개월은 무난히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단 3개월. 그 시간이면 귀촌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깨닫기엔 충분했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는 무너졌고, 내가 그린 삶은 현실 앞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한 채 사라졌다.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준비했던 것들이 오히려 ‘착각의 증거’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다.
외로움, 고립, 낯설음… 감정의 벽은 더 빨랐다
처음 귀촌한 날,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만 가득한 집 안. 분명 도시에서는 그리던 풍경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쓸쓸하고 허전했다. 말 그대로 ‘조용하다 못해 정적’이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어디에도 급한 약속이 없고, 스마트폰 알림도 며칠째 조용했다. 평화가 아니라, 고립에 가까운 고요였다.
귀촌 후 외로움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도시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익숙한 상점에서 커피를 사던 소소한 루틴은 모두 사라졌다. 이웃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도, 나는 ‘외지인’이라는 투명한 선 너머에 있었고, 그 벽은 생각보다 높고 단단했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 전략은 결국 ‘고립’으로 이어졌다.
마트는 차로 20분 거리, 병원은 한 시간 거리. 어디든 움직이려면 계획과 체력이 필요했다. 불편함 자체는 감수할 수 있었지만, 이런 불편함이 쌓여갈수록 ‘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낯설고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감정은 더욱 무거워지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졌다.
그 즈음, 작은 일 하나로 눈물이 났다. 마을 쓰레기 배출 규정을 몰라 주민에게 지적을 들었는데, 그 말보다도 ‘내가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감각’이 더 아팠다. 나는 여전히 여기서 이방인이었고, 스스로 이질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렇게 첫 두 달 동안, 준비했던 매뉴얼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제적 현실, 무너지는 생계 기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괜찮아, 생계는 준비했잖아’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나는 블로그와 온라인 판매로 수익을 낼 계획이었고, 실제로 그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인터넷 환경이 도시처럼 안정적이지 않았고, 온라인 쇼핑몰은 광고를 돌리지 않으면 판매가 거의 없었다. 고정비용만 나가고, 수익은 몇 만 원 수준에 머물렀다.
무엇보다, 일상이 예상보다 고단했다.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일도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고, 생활 자체가 노동의 연속이었다. 수도가 얼어붙은 날은 물을 길어와야 했고, 땔감을 나르지 않으면 집안이 추웠다.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블로그며 쇼핑몰에 집중할 시간도 체력도 부족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역 내 일자리도 없었다. 농번기에는 일손을 구하기도 한다고 들었지만, 그 ‘일손’이라는 것도 결국 관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준비해도 외부인은 그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지원금이나 귀농 정책도 까다로운 조건이 많았고, 행정 절차는 느리고 복잡했다.
세 달쯤 되었을 때, 나는 통장 잔고를 보며 고민했다. “이 상태로는 두 달을 더 못 버티겠다.” 비용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고, 수익은 아직 먼 이야기였다. 준비했던 생계 기반은 현실 앞에 무너졌고, 귀촌이 아닌 생존을 고민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나는 왜 실패했을까 – 준비와 현실 사이의 간극
귀촌을 실패라고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존심도 상했고, 주변의 시선도 두려웠다. 하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나는 ‘준비된 귀촌’을 했다고 생각했다. 책도 읽고, 지역도 미리 답사하고, 콘텐츠 수익도 계획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준비한 건 모두 이론에 불과했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훨씬 더 감정적이며, 훨씬 더 인간적인 요소들이 작용했다. 외로움, 이질감, 경제적 불안, 일상의 불편함 같은 것들은 책에서는 읽을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너무 ‘나만의 기준’으로 귀촌을 준비했다. 내가 편할 것 같은 지역, 내가 좋아하는 생활 방식, 내가 원하는 일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골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어울려 살아가야 하고, 환경에 맞춰 적응해야 하며, 때로는 나를 내려놔야 할 순간도 있다. 나는 그런 준비는 하지 못했다.
세 달이라는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웠고, 그만큼 단단한 교훈도 얻었다. 지금 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와 새롭게 삶을 정비하고 있다. 귀촌이 실패였다고 해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선택 덕분에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맞지 않는지를 정확히 알게 되었으니까.
마무리하며..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귀촌은 단순한 이사나 ‘라이프 스타일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삶의 구조와 감정, 인간관계, 생계 방식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준비도 중요하지만, 준비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다.
귀촌 준비에 1년을 쏟았던 나는 단 3개월 만에 돌아섰다. 누군가에게는 실패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경험이 있기에 나는 지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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