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나는 진짜 ‘행복’을 찾을 줄 알았다
귀촌을 처음 꿈꾸게 된 건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반복되는 출근길 지옥, 사람들 틈에서 부딪히는 스트레스, 아파트에 갇힌 채로 살아가는 것 같은 갑갑함. 매일 밤 늦게 퇴근해 TV를 켜면 시골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텃밭을 가꾸고,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웃고 있는 장면들. 도시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던 여유와 평온이 그 화면 안에는 가득했다.
나는 그 모습에 매료됐고, '저게 진짜 사는 거지'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변에서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은퇴를 앞두고 귀촌을 고민하는 선배, 부모님을 시골로 모시고 싶어 하는 친구, 그리고 퇴직 후 시골 카페 창업을 꿈꾸는 동료까지. 귀촌은 더 이상 일부의 선택이 아니었고, 많은 이들이 ‘인생의 전환점’으로 고려하고 있는 대안처럼 보였다. 마침 나 역시 삶에 큰 변화를 주고 싶던 시점이었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시골은 새로운 시작이자 두 번째 인생의 무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몇 번의 농촌 체험과 지역 탐방 끝에,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에 단층 주택을 얻었다. 마당에는 감나무가 하나 서 있었고, 주변에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사 첫날, 나는 마당에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흙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때는 몰랐다. 내 앞에 펼쳐질 귀촌의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고, 외롭고, 버거운 시간이 될 거라는 걸.
시골 사람들은 정말 정이 많을까? 착각이었다
귀촌 전에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람 냄새 나는 관계'였다. 도시에서는 이웃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시골에서는 자연스럽게 정이 오가는 따뜻한 관계가 형성될 거라 믿었다. 김장철이면 김치를 나누고, 텃밭에서 난 채소를 이웃과 나누는 삶. 그런 장면을 수도 없이 봐왔기에 나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사람들과 금세 친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낭만적인 착각이었다. 내가 들어간 마을은 외지인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몇십 년 이상 살아온 분들이었다. 처음엔 분명 친절했다.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받아주시고, 동네 행사 때도 자리를 내주셨다. 그런데 그 친절은 어디까지나 ‘겉’이었다. 인사를 나눈다 해서 함께 어울리는 건 아니었고, 행사를 도왔다고 해서 곧바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시골은 철저히 ‘관계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누구네 집은 몇 대째 사는 곳이고, 누가 누구랑 친한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틀 안에 ‘새로 온 사람’은 쉽게 들어설 수 없었다. 특히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더더욱 그랬다. 불쑥 다가가면 "저 사람 왜 이렇게 나대지?" 하는 눈초리를 받기 일쑤였고, 너무 조용히 있으면 "왜 이렇게 폐쇄적이냐"는 평을 들었다.
그들의 기준과 속도에 맞춰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도시에서 살던 방식대로 다가갔고, 그건 곧 벽이 되었다. 무언가를 주면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때론 시골에선 ‘쓸데없는 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서로 돕는 것에는 감사도 필요 없고, 부탁도 뚜렷하지 않은 방식이 존재했는데, 그 암묵적인 질서를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문제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결국 고립된다는 점이었다. 나도 결국 점점 말수가 줄었고, 사람들 눈치를 보며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낭만이라 여겼던 불편함, 현실에선 생존의 문제였다
TV 속 귀촌 프로그램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이 흙 묻은 손으로 상추를 따고, 정성껏 차린 한 끼를 마당에서 먹는 모습이다. 그 장면이 주는 평화로움과 만족감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래서 나도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각오했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그 ‘불편함’은 상상이상으로 크고 반복적인 고통이었다.
예를 들어 겨울만 되면 수도관이 얼었다. 집이 오래되었고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보일러가 자주 꺼졌으며, 한밤중에 나가 기름보일러를 재점화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수도관이 얼면 물도 나오지 않았고, 그럴 때는 아침에 대야에 눈을 퍼서 녹여서 써야 했다. 이런 상황이 하루이틀이 아니라며 몇 주씩 반복되었다.
택배도 제때 오지 않았다. 주소 검색이 안 되거나 마을 회관에 맡겨진 택배를 직접 찾아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편의점, 은행, 병원은 모두 차를 타고 최소 30분 이상 이동해야 했고, 대중교통은 하루 몇 번 없어서 타이밍을 놓치면 하루가 통째로 날아갔다.
더 큰 문제는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이 ‘전적으로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도시에서는 AS를 부르면 되던 일도, 시골에서는 담당 기사가 아예 없거나 오지 않겠다는 경우도 많았다. 지붕이 샜을 때, 정화조가 막혔을 때, 집에 벌집이 생겼을 때, 이런 모든 일을 손수 알아보고 직접 해결해야 했다. 시골의 삶은 자급자족이라는 말이 멋있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무한 자가 해결 시스템'에 가까웠다. 그 상황 속에서 느껴지는 고립감은 육체적 피로와 함께 심리적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다시는 안 가겠다는 말, 후회보다 배움의 무게로
귀촌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단정 짓고 싶진 않다. 그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자연의 아름다움, 느긋한 시간의 흐름,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들. 분명 그 자체로 값진 기억들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귀촌’이라는 단어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마치 힐링 여행이나 인생의 보너스처럼 여겼던 선택이었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삶의 구조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었다.
귀촌은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인간관계의 규칙도 달라지며, 불편함에 대한 내성까지 필요하다. 나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로망에 빠져, 방송의 이미지에 취해 현실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댓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마을에서의 외로움, 관계 속에서의 소외감, 생활 속 불편함, 생계의 압박감까지. 그 모든 것이 누적되어 나는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온 지금, 주변에서 귀촌을 고민하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말한다. “가보기 전에, 적어도 몇 달은 살아보고 결정하세요.” 단기 체험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특히 귀촌 후에도 경제활동이 가능할지, 이웃과의 관계는 어떻게 감당할지, 일상 속 불편함을 감내할 체력과 정신력이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 실패 덕분에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나는 조용함보다는 교류를, 불편함보다는 효율을, 고립보다는 자율성을 원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그 사실을 늦게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귀촌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향이 ‘더 나은 쪽’이 될지는, 당신이 무엇을 알고 얼마나 준비했는지에 달려 있다.
'시골 귀촌 실패 사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촌을 말리는 사람들의 말,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 (1) | 2025.07.03 |
---|---|
막연한 로망으로 귀촌하면 반드시 망한다 (0) | 2025.07.03 |
TV 속 귀촌, 현실과 얼마나 다를까? (3) | 2025.07.02 |
귀촌 전엔 몰랐던 시골 사람들과의 거리감 (0) | 2025.07.02 |
귀촌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3) | 2025.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