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하면 따뜻한 사람들이 기다릴 줄 알았다
귀촌을 결심할 당시, 나는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도시의 삭막한 인간관계에 지친 상태였기에, 시골의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들과 소박하게 어울리며 지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보았던 인심 좋은 이웃들, 된장찌개를 나눠먹고 김장철이면 서로 도와주는 그 정겨운 풍경이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도시보다 훨씬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는 나를 이끌어 귀촌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이사 첫날, 트럭에 짐을 실어 동네에 도착했을 때 몇몇 이웃들이 지나가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 짧은 인사에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괜찮은 마을일지도 몰라' 하고 생각했다. 그날 밤에는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이제 진짜 사람 사는 삶을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나도 어느새 시골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텃밭에서 나는 작물도 서로 나누며 살아갈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 따뜻했던 인사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그들 사이'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인사는 정중했지만 깊어지지 않았고, 가볍게 던진 대화는 언제나 겉돌았다. 겉으로는 환영받는 듯했지만, 속으로는 경계의 선을 분명하게 그어두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귀촌 전의 기대와 현실은 그렇게 천천히 어긋나기 시작했다.
겉으론 친절하지만 속으론 선을 긋는 관계
시골 사람들은 분명 친절하다.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고, 마을 행사에 참여하면 먼저 음식을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친절함은 '인간 대 인간'의 호의라기보다는, 마을 내 '관계 유지'를 위한 의례에 가까웠다. 본질적으로는 낯선 사람, 즉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꽤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어느 날은 마을 어르신 한 분과 집 앞에서 마주쳐 인사를 나누고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그분은 반갑게 대답하면서도 슬쩍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긴 오래 살아야 진짜 사람 되는 거야." 그 말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너는 아직 우리 사람이 아니다.’
시골은 생각보다 폐쇄적이다. 서로가 서로의 가족처럼 얽혀 있는 곳이기에, 새로운 누군가가 그 안에 들어온다는 건 기존의 질서를 흔들 수 있는 ‘변수’가 되는 셈이다. ‘누구네 며느리’, ‘어느 집 장남’, ‘몇 대째 사는 집’ 같은 혈연과 지연 중심의 관계망 속에, 외지인인 나는 그저 이름 모를 타인일 뿐이었다. 그저 몇 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또 경로당 청소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가까워지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례로, 나는 마을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여름 축제 준비에도 시간과 비용을 들여 도왔다. 하지만 행사 후 뒤풀이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으려 하자, 어떤 분이 말했다. “여기 자리는 우리끼리 모인 자리야. 다음에 보자고.” 그 순간 나는 내 자리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한편으론 서운했고, 또 한편으론 낯선 곳에 들어온 사람으로서 이해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경험은 명확한 메시지를 줬다. 관계의 거리감은 시간이 아니라 ‘출신’과 ‘혈연’으로 결정되는 곳이 있다는 것.
어울리려 할수록 멀어지는 역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 관계의 거리감을 좁혀보려 더 많은 노력을 했다.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나눠보기도 했고, 마을 행사엔 빠지지 않고 참여했으며, 때로는 직접 김밥과 간식을 싸서 어르신들께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돌아오는 반응은 더욱 미묘했다. "열심히 하긴 하네", "괜찮은 사람 같아"라는 말 이면에는 '우리 사람이 아닌데 잘하네'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었다.
특히 시골은 눈에 띄는 행동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나 스스로는 “잘해보자”는 진심이었지만, 일부 주민들에겐 그 모습이 '튀는 행동'으로 비춰진 것 같다. 나중엔 마치 “혼자 열 올리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무리하게 어울리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벽은 더 높아졌고, 차라리 조용히 지내는 이웃보다 더 눈에 띄는 존재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게다가 시골 특유의 ‘소문 문화’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작은 마을에서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금세 회자되고, 다르게 전해졌다. 나는 순수하게 도와드린 일이 ‘괜히 잘 보이려 한다’는 식으로 왜곡되어 들려오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우연히 마을회관 근처에서 듣고 난 후, 내 마음엔 깊은 피로감이 스며들었다. ‘이곳에선 정말 진심만으로 통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내 진심을 오해받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마음의 문도 차츰 닫히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진짜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
귀촌 전에는 몰랐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 언젠가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골이라는 공간은 도시보다 더 관계 중심적인 사회였고, 그 안에 진입하기 위해선 단순한 친절이나 성실함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 위에만 가능한 것들이 있었다. 귀촌인이 아무리 잘해도, ‘외지인’이라는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배웠다. 시골에선 관계를 억지로 만들려 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자연스럽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
진심이 통하기 위해선 시간도 필요하고, 침묵의 기간도 필요하다. 무리하게 어울리려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며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시에서처럼 “먼저 다가가야 가까워진다”는 공식은 시골에선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또한 귀촌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골 사람들은 무조건 따뜻하다’는 환상은 버리라고. 물론 좋은 분들도 있다. 하지만 관계가 형성되기까지는 분명히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은 고립감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방인의 외로움을 경험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귀촌을 결심하기 전에는 마을을 직접 여러 번 방문해보고, 지역의 분위기를 천천히 체험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지금도 시골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와 어울리기보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스스로의 리듬을 찾는 삶에 집중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거리감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억지로 좁히려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자리를 지키며, 시간에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누군가가 먼저 다가와 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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