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활에 지쳐 찾은 대안, ‘귀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바쁘게만 살아서 뭐하나.”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 꽉 막힌 도로, 불쑥 찾아오는 사람 스트레스. 커피 한 잔 마시며 하늘 한번 올려다볼 틈 없는 하루 속에서, 문득 삶이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뉴스와 유튜브에선 “귀촌 성공 사례”가 넘쳐났다. 닭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 손수 농작물 재배해 소소하게 판매하며 사는 이야기들. 땅을 밟고, 공기를 마시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분명 더 건강하고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번아웃이 찾아왔고, 때마침 구조조정 바람도 불었다. ‘지금이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냈다. 수년간 모은 퇴직금과 약간의 예금, 그리고 서울 근교에 사둔 작은 땅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발판 삼아 귀촌을 실행에 옮겼다. 이삿짐을 싸는 그 날, 나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진짜 인생이 시작된다'는 감정, 오랜만에 느끼는 진심 어린 기대감이 있었다. 내가 택한 시골 마을은 충북의 작은 읍내였고, 집은 오래된 주택이었지만 리모델링하면 충분히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을 입구에는 개천이 흐르고,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풍경 하나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반쯤 힐링된 듯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해 보였던 그 며칠이 지나자, 나는 점점 이 공간이 낯설고 무거워졌다는 걸 깨닫게 됐다. 마치 내가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생각만큼 따뜻하거나 낭만적이지 않다는 건, 정작 그 속으로 들어와 살아보니 비로소 알 수 있는 진실이었다.
무지했던 선택, 준비 없이 내려간 인생
귀촌을 꿈꾸며 나는 수많은 정보를 수집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표면적인 정보에 불과했다.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본 '귀촌 성공기'는 마치 누군가의 포토샵 된 인생 같았다. 아름다운 농장과 웃는 가족들, 그리고 고요한 저녁 풍경. 하지만 그 영상들에선 절대 말해주지 않는 현실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의 거리감, 행정 처리의 불편함, 예기치 못한 날씨와 해충, 그리고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닭과 개들의 울음소리.
이 모든 것은 내 ‘귀촌 낭만’이라는 그림을 무참히 깨부쉈다.
먼저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이었다. 나는 ‘도시보다 시골 사람들이 더 따뜻하고 정 많다’는 말만 믿었다. 그러나 시골에는 이미 형성된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었고, 외지인인 나는 그 질서에서 언제나 변방일 수밖에 없었다. 마을 회관에서 어르신들이 나누는 이야기에는 끼지 못했고, 마을 행사에 빠지면 뒷말이 돌았다. 어쩌다 친절한 분이 계셔도 그 호의는 금세 “너무 나대더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웃과의 경계도 미묘했다. 도와준다고 해서 감사 인사를 하면 '왜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 돌아왔고, 어느 날은 내가 심은 나무 옆에 이유도 없이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마치 이 마을이 내 공간이 아니라, 단지 잠시 머무는 이방인의 임시 거주지처럼 느껴졌다.
생활적인 문제도 컸다. 인터넷은 자주 끊겼고, 수도관은 겨울이면 얼었다. 쓰레기 배출 요일을 놓치면 일주일 내내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살아야 했다. 그저 퇴근하고 에어컨 틀고 라면 먹던 도시 생활과는 너무 달랐다. 귀촌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 알았지만, 준비 없이 내려온 인생은 되려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사람을 피하게 되었고, 매일이 ‘견디는 삶’이 되어갔다.
고립의 늪에 빠지다, ‘나’라는 존재의 해체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외로움에 익숙해지기보다 외로움에 무뎌지고 있었다. 귀촌 전엔 하루에 몇 번이고 울리던 메시지나 전화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도시 친구들과는 대화가 끊겼고, 그들이 모임을 갖는 SNS 사진을 볼 때마다 나만 세상에서 밀려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골은 조용했지만 그 고요함은 치유가 아니라 고립이었다. 말 상대가 없어 스스로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유튜브 영상이나 TV 소리로 집 안의 정적을 채웠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가 누구인지 잊혀진다는 감각이었다. 도시에서는 누군가의 동료, 친구, 고객, 이웃으로 존재했지만, 여기선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누군가의 역할로 살던 내가, 그냥 혼자라는 사실은 하루하루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에 사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체력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집 주변 잔디를 자르는 것만 해도 몇 시간이 걸렸고, 해충 퇴치, 수도관 점검, 겨울철 보일러 관리 등 모든 일이 내 손을 거쳐야만 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일조차 시골에선 ‘노동’이었다. 몸이 아파도 가까운 병원까지는 차로 40분, 그조차도 예약이 밀려 원하는 진료를 받기 어려웠다. 어느새 나는 집 안에서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단 한 번도 ‘편안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 삶 속에서 점점 자신을 놓아가고 있었다.
나의 실패가 말해주는 것들
결국 나는 도시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도망”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맴돌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를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분명 중요한 걸 배웠다. 귀촌은 ‘도피처’가 아니라, 철저한 ‘준비의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것. 마음이 지친다고 자연이 대신 힐링해주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시골은 도시보다 훨씬 더 강인한 생존 의지가 필요한 공간이라는 걸, 나는 늦게나마 깨달았다.
나는 지금도 시골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 고요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다만 그곳에 ‘살아간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일주일의 휴식과 평생의 거주지는 다르다. 귀촌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귀촌을 전환점으로 삼고 싶다면, 현실부터 냉정하게 바라보라. ‘로망’은 잠시지만, ‘현실’은 매일매일 마주해야 하니까.
사람들은 실패를 숨기고 싶어 하지만, 나는 나의 실패를 기록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처럼 꿈만 꾸다 내려온 이들이 어떤 준비가 부족했는지, 어디서부터 무너졌는지, 무엇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귀촌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하지만, 나처럼 한동안 삶을 정지시키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돌아와 다시 도시의 소음과 바쁜 일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제 나는 조금 더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려 한다. 실패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준비 없는 선택이 위험한 것일 뿐.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선택에 도움이 되기를,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착각’을 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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