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귀촌 실패 사례

시골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

밤하늘콩이 2025. 6. 30. 12:01

시골에 대한 기대는 컸지만, 나는 너무 쉽게 결심했다

도시에 살면서 자주 떠올랐다. ‘이렇게 바쁘게, 숨 가쁘게만 살아야 할까?’ 출퇴근 전쟁에 치이고, 인생의 방향성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지쳤을 때, 나는 시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텃밭을 가꾸며 아침 햇살 속에 눈뜨는 삶, 복잡한 인간관계 대신 단순하고 조용한 일상, 그게 꼭 필요한 전환 같았다. 당시엔 그것이 ‘치유’라고 생각했다.

 

귀촌 실패..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

 

그래서 나는 서둘러 귀촌을 결정했다. 지방 소도시 중에서도 인구가 적고 조용한 곳을 골라 내려갔다. “어차피 조용한 데서 살 거면, 진짜 시골이 낫지”라는 생각이었다. 땅값도 싸고, 집도 생각보다 넓었다. 이 정도면 도시에서 한달에 내던 월세로도 넉넉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대로 ‘전원생활 준비’라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결심’이지 ‘준비’는 아니었다. 시골 생활이 어떤 리듬으로 흘러가는지, 나는 그 어떤 현실적인 감각도 없이 내려갔다. 가끔 주말에 다녀갔던 전원주택의 기억이 전부였고, 실제로 24시간 365일 그곳에 살아본 적은 없었다. 이웃과의 거리, 일상에서 필요한 물자 확보, 집 유지·보수의 어려움 같은 건 감히 상상도 못했다.

나는 단지 도시에 지쳤기 때문에 시골로 간 것이지, 시골에 맞는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차이는 처음엔 크지 않아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점점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문제는 시골이 아니었다. 내가 그 생활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골의 일상은 상상보다 훨씬 ‘노동 중심적’이었다

귀촌 전, 나는 여유롭고 한적한 삶을 상상했다. 천천히 걷는 아침 산책, 정원에 앉아 마시는 커피, 계절 따라 심고 수확하는 소소한 농작물… 하지만 시골의 하루는 상상보다 훨씬 더 분주했고, 노동의 연속이었다. 땅을 관리한다는 건 단순히 물 주고 풀 뽑는 게 아니었다. 날씨에 따라 기계도 다뤄야 하고, 벌레, 가뭄, 병충해에 대한 대응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그것은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육체적으로만 힘든 게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도시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 가능한 방법이 있지만, 시골에선 모든 게 느리고, 때론 방법 자체가 없다. 수도 고장이 나면 며칠씩 대기해야 하고, 인터넷이 끊기면 자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무엇 하나 간단히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도시에서는 '생활'이 자동처럼 흘러가지만, 시골에선 모든 것이 직접 손을 써야 가능한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이런 노동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끝나면 쉴 수 있는 도시의 구조에 익숙했다. 하지만 시골은 정해진 업무 시간이 없었다. 비가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밤을 새워서라도 처리해야 했고, 동네 어르신의 도움 요청은 곧 나의 일이 되곤 했다. 나는 그걸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매일 같이 겪으니 점점 지쳐갔다.

결국 나는, 내가 상상했던 시골의 여유로움이 노동 위에 성립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 노동을 기꺼이 감내할 각오 없이 시골에 들어온 나는, 당연히 그 일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시골은 느긋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늘 ‘해야 할 일’이 가득한 곳이었다.

사람보다 고립이 힘들었고, 고립보다 ‘내 마음’이 더 문제였다

귀촌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관계다. 나 역시 처음엔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기본적인 예의만 지키면, 시골 사람들도 따뜻할 거라 믿었다. 실제로 초반엔 인사도 주고받고, 마을 회관 행사에도 나가봤다. 하지만 ‘사람 좋다’는 인상과 ‘진짜 친밀함’은 다르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에게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했고, 나는 그 경계를 넘는 데 실패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관계의 부재’였다. 도시에선 나와 관심 없는 사람들과 섞여 지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이 있었다. 회사 동료, 카페 알바생, 지하철 옆자리 사람조차도 하나의 연결망이었다. 시골에서는 그런 작은 연결이 사라졌다. 하루 종일 사람을 한 명도 보지 않고 보내는 날이 이어졌다. TV 소리나 라디오가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고립보다 더 힘든 건, 그 고립에 익숙해져가는 내 모습이었다. 점점 사람과 말하는 일이 줄고,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않게 됐다. “혼자가 편하다”는 착각 속에서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돌아보면 그것은 외로움이 아닌, 관계 단절에 대한 무감각이었고, 그게 더 무서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사람들과의 거리보다도, 그 거리 속에서 무너지는 ‘내 마음’을 돌보지 못했던 게 문제였다. 귀촌은 외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돌보는 방식의 전환인데, 나는 그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내려간 셈이었다.

문제는 시골이 아니라, 내가 나를 몰랐던 것

귀촌을 실패라고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나는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시골이랑 안 맞았나 보네”였다.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골이 나와 안 맞았던 게 아니라, 그 삶을 살아갈 ‘나 자신’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조용한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적당한 소음과 관계 속에서 안정을 찾는 사람이었다. 나는 자급자족을 멋지다고 여겼지만, 정해진 월급이라는 예측 가능한 수입 구조에 익숙한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노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건 직장 안의 역할로서였지, 생계 전반을 책임지는 형태의 노동은 감당하지 못했다.

귀촌을 준비할 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만 생각했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차이가 결국 모든 걸 결정지었다. 시골은 생각보다 솔직한 공간이다. 꾸며진 도시의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생활은 곧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지금 누군가가 귀촌을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꼭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시골이 어떤 곳인지 알기 전에, 먼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야 해요.” 귀촌은 환경의 변화이기 이전에, 자기를 깊이 들여다보고 새로운 삶의 형태를 ‘설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준비 없이 갔고, 결국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시골이 아니라, 내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