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에 취한 계획, 현실을 외면하다
귀촌을 준비하던 그 시절, 나는 막연한 기대와 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연 속에서의 느긋한 삶, 아침이면 새소리로 눈을 뜨고, 저녁이면 고요한 산그늘 아래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그런 삶. 도시는 사람과 소음, 끝없는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런 일상에 지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시골로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가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도망치고 싶다’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귀촌은 삶의 전환점이자 중대한 결정이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가벼운 여행을 떠나듯 준비를 시작했다. 농촌 관련 책을 몇 권 읽고, 블로그에서 몇몇 성공담을 훑어본 게 전부였다. 마치 여행자처럼, 그곳에서의 삶은 늘 평화롭고 고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마을 주민들과 금세 친해질 줄 알았고, 작은 텃밭에서 무언가를 기르면 금세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모든 것이 너무 쉽게 보였다. 문제는,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귀촌은 단순히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삶의 구조 자체의 변화’라는 점이다. 단전, 단수, 폭설, 고립, 교통 문제, 일자리 부족, 사회적 고립 등 도시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불편과 불안정이 일상처럼 벌어진다. 하지만 그런 현실은 내가 보고 듣고 싶지 않았기에 철저히 외면했고, 결과적으로 내 귀촌 계획은 처음부터 ‘실패’를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보 수집은 했지만 ‘이해’는 없었다
귀촌을 결심한 후, 나는 나름대로 발품을 팔았다고 생각했다. 지방의 몇몇 마을을 다녀보고, 빈집을 매물로 내놓은 중개업소를 찾아가 상담도 받았다.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귀촌 선배들의 이야기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단순히 표면적인 정보 수집에 불과했다. 내가 정말로 그 지역의 삶을 이해하고, 나에게 맞는지를 분석해 본 적은 없었다.
예컨대 나는 ‘전원주택’을 지을 생각으로 땅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그 땅이 행정구역상 어디에 속해 있고, 배수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인근에 축사가 있는지, 산사태 위험지역인지, 통신과 전기 시설은 어떤지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 그저 마을 입구가 예뻐 보이고, 주위에 산과 들이 펼쳐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에 들었다. 감성은 있었지만, 판단은 없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마을 커뮤니티의 작동 방식도 몰랐다. 겉으로는 다정한 인사와 미소로 반겨주는 듯했지만, 실제로 마을에 녹아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매년 반복되는 공동작업, 경로잔치, 제사, 회비, 불문율 등 외지인이 모르는 수많은 ‘관습’이 존재했고, 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이방인 취급을 벗어나기 어렵다. 나는 그저 “잘 지내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태도로 접근했다가 금세 벽을 마주쳤다.
정보를 모은다고 해서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귀촌에 성공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지역 이해도’가 높다. 단순히 살기 좋은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을 찾아낸 것이다. 반면 나는 겉만 보고 판단했고, 그 결과는 실패였다. 정보는 있었지만, 통찰은 없었다. 내가 그곳에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지겠지’ 하는 생각만 했던 게 치명적이었다.
경제적 플랜 없이 시작한 삶, 무너지는 일상
귀촌에 대해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시골은 물가가 싸다’, ‘조용히 살기엔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말들이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막상 내려가 보니 생활비는 예상보다 훨씬 많이 들었다. 전기와 수도가 불안정한 지역이라 자가발전기나 별도 정수시설을 마련해야 했고, 교통편이 없어 차가 필수였다. 도시에선 대중교통으로 해결하던 이동 수단이 ‘차 2대’로 바뀌었고, 그에 따른 유지비도 만만치 않았다.
더 심각했던 건 ‘수익 구조’다. 나는 막연히 블로그를 운영하거나 농산물 판매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가능성’이지 ‘수익 모델’은 아니었다. 농사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땅을 일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농작물 재배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심지어 작물 판매는 경쟁도 심하고 마진도 낮았다. 결국 시간과 돈은 들어갔지만, 수익은 거의 없었다. 블로그 운영 역시 방문자가 적어 수익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유지비가 계속 들었다. 노후된 빈집을 수리하느라 매달 예산이 초과됐고, 시골 특유의 계절성 고장(예: 겨울철 동파, 여름철 곰팡이 등)도 빈번했다. 대출 없이 준비했지만, 결국 도시에서의 저축을 하나둘씩 까먹는 상황이 됐다. 수입이 없이 지출만 이어지는 생활은 사람을 점점 불안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천천히 자리를 잡자’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렇게 경제적 기반 없이 귀촌하면, 결국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된다. 꿈을 좇아 떠났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수익 없이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중장년층이 아닌 젊은 세대라면 생계는 곧 삶의 기반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경제 계획 없이 시작된 귀촌은 반드시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삶의 설계’가 없었다는 진실
돌이켜보면, 내 귀촌 계획은 처음부터 틀려 있었다.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이 없었다. 단지 도시가 싫었고, 시골이 좋아 보였을 뿐이다. 도시의 피로가 쌓일수록, 시골의 정적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결국 그것만을 기준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어디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떠난 귀촌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귀촌을 실패한 후 이렇게 말한다. “좀 더 생각했어야 했어.” 그 말은 곧,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는 뜻이다. 귀촌은 선택이 아니라 ‘설계’여야 한다.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수익 구조를 어떻게 유지하며, 인간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떠나는 귀촌은 결국 마을이 아닌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나는 그 설계 없이 출발했다. 지금에 와서야 그 사실이 명확해진다. 한때는 다른 누군가의 귀촌 성공기를 보며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들이 겪은 준비 과정과 실행력은 나와 전혀 달랐다. 성공한 사람은 결코 무작정 시작하지 않는다. 실패한 사람만이 ‘일단 가보자’고 말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실패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귀촌을 꿈꾸는 누군가에게 ‘잠깐만 멈춰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감성도 좋고, 용기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계획’이다. 단단한 삶의 밑그림 없이 시작되는 귀촌은,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여도 결국 안에서부터 무너진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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