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함’이라 믿었던 조용함, 오히려 불안을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귀촌을 꿈꾼다. 시끄러운 도시의 삶에 지쳐 “이제는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나 또한 그랬다. 사방에서 울리는 차량 소음, 아파트 벽 너머의 말다툼 소리, 새벽까지 켜져 있는 간판 불빛 속에서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골로 향했다. 목적은 분명했다. ‘조용한 삶 속에서 휴식과 재충전을 누리자’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오히려 귀촌 이후 나는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환경 변화 때문이라 생각했다. 매트리스가 바뀌어서일 수도 있고, 늦가을의 기온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면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고, 하루하루가 무기력해졌다.
이상했다. 나는 그토록 ‘조용한 곳’을 원했다. 그런데 지금, 이 너무 조용한 공간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이 조용함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낯선 공허함이 들어섰고, 그 공허함은 머릿속을 점점 잠식해 들어왔다.
조용함이 가져오는 심리적 불안의 메커니즘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극에 익숙한 생물이다. 도시의 소음은 분명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배경음’처럼 받아들이며 일상을 유지한다. 그런데 그 소음이 완전히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의외로 많은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불안함을 느낀다.
내 경우, 시골의 조용함은 처음에는 신선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다”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새벽 2시, 창밖에서 바람 소리조차 없을 때, 나는 ‘이 고요함이 너무 낯설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사운드 베이스(Sound Base)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익숙한 소리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는 이론이다. 이 사운드 베이스가 완전히 사라지면, 뇌는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인식하며 경계심을 높인다. 결국 뇌가 과도하게 각성 상태가 되어, 수면을 방해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도시에 오래 거주한 사람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귀촌 실패'라는 감정과 결합된 불면증
불면증은 단순히 조용함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귀촌에 실패한 것 아닐까?”라는 불안감도 불면의 원인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적응 기간’이라며 나를 다독였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밤마다 뒤척이는 나를 보며 점점 자괴감이 생겼다.
시골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이웃과의 거리는 멀고, 친구 하나 없는 동네에서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보내는 날도 많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존재적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카페 소리, 지하철 소리, 광고 방송 등이 무의식적으로 ‘사회 속의 나’를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확인이 없었다. 그저 조용하고, 고립되어 있으며, 나 자신과만 대면하는 시간들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 결과, 밤이 오면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멈춰 있는 듯한 정적 속에서 머릿속은 오히려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불안해지며, ‘내가 여기서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커졌다. 결국 이런 복합적인 스트레스가 수면을 방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 것이다.
조용함에 적응하는 것이 아닌, 소음과의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귀촌을 로망처럼 생각한다. 특히 ‘조용한 환경’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조용함은 분명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그 조용함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내가 불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적당한 소음을 다시 삶에 들이는 것이었다. 백색소음 기계를 사용하거나, 새벽에 잔잔한 라디오를 틀어놓는 등, 도시에서 들었던 ‘생활 소리’를 일부러 재현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오히려 그 소리가 불안을 완화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일과를 규칙적으로 만들고, 낮에는 마을 주민들과 가벼운 인사라도 나누려 노력했다. 심리적 고립감을 줄이기 위한 시도였다.
결국, 귀촌은 단순히 ‘도시를 떠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리듬과 환경에 나 자신을 맞추는 여정이다. 조용함을 단순히 ‘좋은 것’이라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조용함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용한 삶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낯설음과 공허함 또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무리하며..
귀촌 후 불면증을 겪은 경험은 내게 큰 교훈을 줬다. '조용한 삶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는 점, 그리고 인간은 자신에게 익숙한 자극이 사라졌을 때 오히려 더 큰 혼란을 겪는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지금도 나는 시골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조용함과 소음 사이에서 스스로의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귀촌을 고민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글이 조용한 삶의 양면을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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