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초반, 나를 속인 건 ‘이 착각’이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멍하니 서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토록 벌어도 여유가 없을까?"
전세금, 월세, 교통비, 외식비까지 매달 숨이 턱턱 막혔다. 언제까지 이렇게 쫓기듯 살 수는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귀촌이었다. 블로그나 유튜브, 방송에서는 시골에 단독주택을 저렴하게 구매하고, 텃밭을 가꾸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소개했다.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시골 부동산을 알아보니,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할 금액으로 넓은 땅과 집을 살 수 있었다. 전세금의 절반 가격으로 200평짜리 주택이 가능한 현실에 충격을 받았고, 마치 기회를 잡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가격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한 결정’이었다. 부동산 계약 당시에는 등기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집 구조나 배관, 단열 상태 같은 기본적인 기술적 점검도 거치지 않았다. 단지 싸다는 이유로, 그리고 "어차피 고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으로 집을 구매했다. 막상 살기 시작하니, 손볼 데가 너무 많았다. 결국엔 처음 샀던 가격보다 두 배 넘게 돈이 들어갔다. 집값은 싸도, 살 수 있게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전혀 싸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가 믿었던 '귀촌 = 절약'이라는 등식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생활비가 줄긴커녕 더 늘어났다고?
귀촌 후 내가 가장 당황했던 부분은 바로 생활 유지비였다. 도시에서의 월세나 전세금이 빠지면 생활비는 줄어들 줄 알았지만, 시골의 유지비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우선 난방. 도시에선 가스보일러를 사용해 한겨울에도 10~15만 원 정도의 난방비면 충분했지만, 시골에서는 기름보일러를 써야 했고, 기름값은 계절마다 폭등했다. 겨울철에는 한 달 난방비로 35만 원 이상이 나왔고, 한파가 오면 추가 주유를 해야 해서 50만 원이 넘은 적도 있었다.
또한 수도관이 오래돼 누수 사고가 났고, 배관 교체에만 수백만 원이 들어갔다. 여름에는 모기와 해충이 심해서 방역 작업을 전문 업체에 의뢰해야 했고, 잔디 깎는 기계, 제초제, 농약, 퇴비 등 ‘자급자족’을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은 계속 늘어났다. 쓰레기 수거는 정해진 날에만 가능했고, 대형 쓰레기는 읍내까지 차로 직접 가져가야 했다. 이런 일상적인 불편함을 해소하려면 장비를 사야 하고, 장비를 유지하려면 또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게다가 택배는 마을 입구까지만 오기 때문에 자주 나가야 했고, 차량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자가용을 하나 더 구매하면서 보험료와 유류비, 정비비가 추가되었다. 결국 도시에선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했던 이동이, 시골에선 필수 ‘교통 인프라’ 비용이 됐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생활 유지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경제적으로 더 여유로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허상이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급자족, 왜 오히려 나를 지치게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시골살이의 장점으로 꼽는 것이 ‘자급자족’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당이 넓으니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키우고, 직접 수확해서 식비를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고추, 상추, 쌈채소, 감자, 고구마 등을 심기 시작했고, 처음엔 수확의 기쁨도 있었다. 하지만 곧 현실의 벽을 마주했다.
농사라는 것은 한두 가지 심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계절마다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해충을 막고, 병충해를 예방해야 한다. 한 번이라도 병이 돌면 전체 작물을 날릴 수 있고, 작황이 나쁘면 수확 자체가 불가능했다. 수확한 채소를 보관하는 것도 문제였다. 냉장 공간이 부족했고, 말리거나 저장하는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갔다. 마트에서 한 봉지에 2천 원 하는 상추를 수확하기 위해 나는 하루 종일 땡볕 아래에서 땀을 흘려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농기구와 장비였다. 처음엔 삽 하나 들고 시작했지만, 갈수록 필요한 기계들이 늘어났다. 제초기, 분무기, 경운기, 심지어는 물 호스와 연결 부품까지 사야 했다. 여기에 비료, 농약, 퇴비 등은 매년 새로 구매해야 하고, 일부는 보관도 어렵다. 결국 자급자족은 식비를 아끼는 방식이 아니라 내 시간과 체력, 돈을 소모해서 ‘내 노동의 가치’를 희생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트에서 장 보는 것이 훨씬 저렴하고 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수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입된 뒤였다.
집은 싸게 샀는데, 왜 계속 돈이 샐까?
귀촌 전 나는 단순히 ‘비용’만을 생각했다. 도시에서 나가는 월세, 외식비, 교통비를 줄이면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도시에서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시스템화되어 있고,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를 부르면 금방 해결됐다. 하지만 시골에선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보일러가 고장 나면 기술자를 부르기까지 2주가 걸리고, 인터넷 연결이 느려도 통신사에서 지역 문제라며 개선이 어렵다고 했다.
이런 불편함은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에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가져왔다. 무언가 고장 났을 때, 고칠 수 있는 방법이 한정돼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게다가 비용이 계속 예상 밖으로 불어나니 금전적 스트레스까지 겹쳤다. 나는 귀촌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여유로워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늘 불안하고, 예산을 초과하는 지출을 매달 걱정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내가 비상금으로 남겨놨던 예산이 집 수리와 생활 유지비로 모두 사라졌을 때였다. 당시에는 다시 도시로 돌아갈 여비도 부족했고, 그 상황은 나에게 큰 심리적 타격으로 다가왔다. ‘이럴 거면 그냥 도시에서 조금 더 버티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자책이 반복되었다. 경제적 절약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방식이라면, 그건 더 이상 ‘절약’이 아니었다.
귀촌이라는 선택, 진짜 나와 맞았을까
나는 결국 1년 반 만에 도시로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경험한 귀촌 생활은 단순한 실패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알게 된 과정이었다.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이 결코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경제적, 정서적, 신체적 소모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귀촌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단순히 ‘비용을 줄이자’는 이유만으로는 인생을 옮길 수 없다는 진실이었다.
시골 생활이 잘 맞는 사람도 분명 있다. 정비 능력이 있거나, 손재주가 좋거나, 관계에 유연하고, 비용 발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나처럼 시스템에 의존해 살아온 도시형 인간에게 시골은 오히려 비용과 에너지를 더 소모하는 공간이었다. 집은 싸지만, 고치고 나면 비싸지고, 생활비는 줄어들 줄 알았지만 더 늘어나고, 정신적으로는 여유로워질 줄 알았지만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었다.
나는 그 집을 싸게 샀지만, 결국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시간도, 마음도, 예상보다 훨씬 많이 소모됐다.
돌이켜보면, 가격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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