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귀촌 실패 사례

텃세보다 더 무서운 건 외로움이었다 (귀촌 실패 후기)

밤하늘콩이 2025. 6. 25. 08:08

낯선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 시작된 작은 긴장감

서른아홉. 회사를 그만두던 날, 아내와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그저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눈빛만 오갔고, 결국 우린 시골로 떠났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아보자." 그렇게 도심의 작은 아파트를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단독주택을 구입해 내려왔다. 주변은 고요했고, 하늘은 맑았다. 도시에서 들리던 자동차 소리 대신 새소리가 들렸고, 밤에는 별이 보였다. 우리는 그런 풍경 속에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귀촌 실패 외로움

 

하지만 마을 어귀에 이사 트럭이 들어서던 그 날,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우릴 지켜보던 그 순간부터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스쳤다. 마치 하나의 작은 조직 안에 낯선 외부인이 침입한 듯한 분위기였다. 그 시선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묘하게 무겁고 뻣뻣했다. 말은 걸지 않았지만 시선은 집중되었고, 조심스러운 눈길 속에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마치 ‘이방인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퍼지는 듯한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그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조용한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의 거리로, 그리고 나중엔 침묵과 냉담으로 이어졌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이곳에서 ‘사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그리 낯선 눈빛이 나를 긴장하게 했을까?

시골 사람들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거칠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따뜻하게 맞이해준 것도 아니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마주칠 때면 형식적인 인사를 하긴 했지만, 눈을 제대로 마주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디서 왔냐’, ‘무슨 일 하냐’ 같은 질문을 받아도 말투는 친절했지만 그 이면에 묘한 선을 긋는 기류가 느껴졌다. 내가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있으면 어르신들이 지나가며 슬쩍 지켜보고, 마을 청소에 참여하면 내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친해질 거야"라는 마음으로 넘겼다. 하지만 한 번 마을 행사에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고 나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말 한마디 없이 지나치고, 회관에 가도 대화가 끊기는 느낌. 어느 날엔 누군가 내가 낯설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괜히 눈치가 보였다. 시골 사람들은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끈끈한 연대가 있었고, 그 울타리에 내가 들어가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텃세'라는 건 꼭 심한 말이나 갈등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분명한 '은근한 거리감'이 더 무서웠다.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끝나고 나면 곧잘 나에 대한 얘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은 생각보다 무겁고 피로했다. 그들에게 나는 ‘우리 사람’이 아니었고, 그 경계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고요함 속에서 내가 가장 자주 느낀 건 무엇이었을까?

텃세보다 더 무서웠던 건 바로 외로움이었다. 처음에는 조용한 시골 생활이 오히려 반가웠다. 복잡한 인간관계, 시끄러운 회식 자리, 형식적인 대화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너무 좋았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고, 자연 속에서 걷고 책을 읽으며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게 참 편안했다.

하지만 이 조용함은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일 줄은 몰랐다. 생각을 나눌 상대가 없으니 감정이 정체되고, 감정이 쌓이니 우울감이 스며들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나 흐린 날엔 더욱 고요함이 침묵처럼 마음을 덮었다. 한마디도 말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는 일이 일주일 중 절반 이상이었다. 간혹 전화로 친구와 대화를 해보려 했지만, 공감보다는 ‘넌 왜 그런 데 갔냐’는 반응이 돌아올 뿐이었다.

SNS에 글을 올려도, 댓글은 형식적인 위로였고, 정작 나는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웃는 법을 잊은 듯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외로움은 시끄럽지 않게, 그러나 아주 무겁게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고립’된 상태였다. 나라는 존재가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않는다는 감각. 그것이 나를 지치게 했다.

관계 없는 자유 vs. 관계 안의 고립

내가 서울에서 살 때는 늘 복잡함과 바쁨 속에 살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택배 기사님과는 문자 한 통으로 소통했다. 그때는 그런 무관심이 피곤했지만, 시골에서 살아보니 그 무관심조차 나에겐 '자유'였다는 걸 깨달았다. 도시는 익명성 속에서 나를 보호해줬고, 원할 때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함이 있었다. 그러나 시골은 ‘인간관계가 없거나 너무 많은’ 두 가지 극단만 존재했다.

마을에서는 누가 누구 집에 다녀갔는지, 누구네 집에 택배가 몇 개 도착했는지, 심지어 어떤 반찬 냄새가 나는지도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나는 처음엔 이 관심을 '정'이라고 해석하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숨이 막혔다. 개인적인 생활 공간까지 시선이 닿는 느낌은 심리적으로 피로했다. 마치 감시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도시에서는 내 생활에 그 누구도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관심’이 나를 지켜주는 방어막이었던 셈이다. 시골살이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내가 나답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생활, 감정, 생활 방식 모두가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구조 속에서 나는 점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도시가 더 익숙했을까?

나는 결국 귀촌 생활을 1년 반 만에 접고 도시로 돌아왔다. 시골집은 싸게 내놨지만 쉽게 팔리지 않았고, 되려 유지비만 더 들었다. 다시 도시로 돌아왔을 때, 처음 며칠은 적응이 쉽지 않았다. 다시 시끄러운 도로 소음, 높은 건물들, 바쁜 사람들 사이에 있으려니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버스 기사에게 인사하지 않아도 되고, 마트에서 누가 뭘 사는지 관심 없으며, 엘리베이터에서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되는 ‘무심함’이 나를 편하게 해줬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시골은 나에게 맞지 않는 삶의 방식이었다. 자연은 좋았지만, 그 속에서 사람 없이 살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텃세도 분명 고단했지만, 결국 나를 지치게 한 건 관계의 부재, 그리고 외로움이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며, 삶의 터전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과 연결된 환경이어야 했다. 나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를 통해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시골에서의 1년 반은 내 마음의 구조를 완전히 바꿔놨다.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나에게 필요한 건 고요함이 아니라, 연결된 삶이었다.  

삶의 관계 구조를 바꾸는 일이며, 그만큼의 준비와 성찰이 없다면 외로움은 텃세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