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을 말리는 사람들의 말,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
‘그 사람들은 도시밖에 몰라서 그래’라는 착각
귀촌을 준비하던 시절, 나에게 귀촌을 만류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살아온 이들이었다. 가족도 그랬고, 오랜 친구도 그랬다. 한결같이 “그거 쉽지 않을 거야”, “왜 그런 고생을 자처하니”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당신들은 시골의 여유로움과 자연을 몰라서 그래.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리고 나는 그 조언들을 하나하나 흘려들었다.
하지만 귀촌 1년 만에 나는 그들의 말이 단순한 고집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이 도시에서만 살았기에 오히려 시골의 불편함과 낯섦을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에서 누리던 것들을 잃었을 때의 공허함,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나보다 한발 더 앞서 있었고, 그 조언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간접 경험의 경고였다.
어떤 결정이든 삶을 바꾸는 선택에는 냉정한 시선이 필요하다. 특히 귀촌처럼 장소, 인간관계, 직업, 생활 환경까지 한꺼번에 바꾸는 일은 그저 로망만으로 덤빌 일이 아니다.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그 말 속에 어떤 경험의 파편이 담겨 있는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말리는 이유는 종종 당신이 아직 보지 못한 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쉬웠으면 다 내려갔겠지"라는 말의 무게
귀촌을 결심하면 처음엔 대체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다.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작은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마을 사람들과 정겹게 지내는 삶.” 인터넷과 방송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넘쳐난다. 귀촌을 꿈꾸는 이들은 대부분 그런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귀촌을 말리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쉬웠으면 다 내려갔겠지.”
이 말은 단순한 냉소가 아니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는 일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삶의 시스템’을 통째로 갈아엎는 일이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얽혀 있다. 생계는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병원은 먼데, 응급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가 있다면 학교는 어떤가? 나이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 농사일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게다가 사람들과의 관계도 생각보다 훨씬 조심스럽다. 마을은 ‘관계의 밀도’가 높다. 익명성이 없는 대신, 사소한 오해도 쉽게 퍼지고 오래 남는다. 관혼상제 참석, 마을일 참여, 각종 모임 등 단순히 이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게가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들은 말리는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직접 귀촌을 해보지 않았더라도, 주변에서 실패하거나 고생한 사례를 들어봤기 때문에 쉽게 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말을 무시한 채 “난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면, 결국 같은 길을 밟게 될 수도 있다.
현실을 알리는 조언, 로망을 꺾는 것이 아니다
귀촌을 말리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할 수 있다. “왜 내 결정을 지지해주지 않지?”, “응원은 못할 망정 왜 자꾸 겁을 주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모두 ‘부정’만을 위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귀촌이라는 인생의 큰 전환점 앞에서 좀 더 넓은 시야로 현실을 보라는 신호일 수 있다.
귀촌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운’이나 ‘감성’만으로 성공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 지역에 대해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고, 최소 몇 달은 임시 체류를 해본 후 정착을 결정했다. 농사를 짓든, 작은 사업을 하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내려간 것이다.
반면 실패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충분한 준비 없이, 그리고 조언을 무시한 채 내려간 경우가 많다. “일단 가서 부딪혀보면 되겠지”는 도시에서는 통하지만, 시골에서는 오히려 큰 위험이 된다.
조언을 한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그 조언들이 로망을 깨는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안에는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그 말을 듣고 멈추라는 것이 아니라, 준비가 충분한지 점검해보라는 뜻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 책임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귀촌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반대를 무시하고 내려간 사람들 중 상당수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그 말이 맞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물론 귀촌을 말린 사람들 모두가 시골 생활을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말 속에는 도시인이 시골에 정착할 때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통찰이 담겨 있었다.
중요한 건,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그 선택의 결과를 결국 자신이 책임진다는 점이다. 귀촌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삶의 기반 전체를 옮기는 일이다. 특히 가족이 함께하는 경우라면, 더 큰 책임이 따른다. 아이들의 적응 문제, 배우자의 직업 문제, 부모님의 건강 등 다양한 요소들이 연결되어 있다.
귀촌을 말리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그 말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조언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 때로는 그 조언이 삶의 방향을 바꿔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그때 그 말 들을걸”이라는 후회를 하게 되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조언을 무시했다고 해서, 결과의 무게까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귀촌은 누군가의 응원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더 치열하게 질문하고 준비해야 하는 여정이다.
마무리하며..
귀촌을 말리는 사람들의 말은 때때로 거슬리고, 심지어 비난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반대’가 아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선과 위험 요소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무작정 거부하거나 흘려듣기보다는, 오히려 그 조언 속에서 나만의 전략과 계획을 다시 세워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다를 거야’라는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나는 더 준비된 사람이 될 거야’라는 태도가 훨씬 멀리 간다. 귀촌을 말리는 말들,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심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