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귀촌, 현실과 얼마나 다를까?
화면 속 그들의 여유로운 귀촌,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켜면 귀촌에 대한 콘텐츠가 넘쳐난다. 산속에 조용히 집을 짓고 닭을 키우는 노부부,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자급자족하는 40대 부부, 버려진 시골집을 리모델링해 감성 가득한 집으로 바꾸는 청년의 이야기. 이들은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을 보여주며, 마치 "이것이 진짜 삶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 역시 그런 방송을 즐겨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 무언가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고, 소소한 일상에서의 행복을 찾는 모습이 너무도 이상적으로 보였다. 여유롭고 단순하며, 각박한 도시에서 볼 수 없던 평화가 느껴졌다. 흙을 밟고, 땀을 흘리며,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사는 삶. 게다가 방송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밝고 긍정적이었다. 수입은 많지 않아도 만족스럽고, 불편한 점도 있지만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진지하고 차분한 말투에 나는 어느새 빠져들었고, 마침내 귀촌을 결심하게 됐다.
이사할 날이 다가올수록 두근거렸다. 나는 그들이 보여준 풍경을 나도 곧 직접 마주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방송에서처럼 소박하지만 감성적인 공간, 마을 사람들과 정겹게 인사하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삶. 내게도 분명 그런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송은 보여주지 않는 것들,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귀촌 후 며칠간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매일 새소리에 눈을 뜨고, 직접 끓인 국과 밥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마당에 핀 이름 모를 풀꽃도 예쁘게만 보였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얼마 가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쉽게 넘겼던 ‘불편함’이 현실에서는 하루하루를 괴롭히는 요소가 되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속도는 도시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느렸고, 영상 하나 보는 데도 끊김이 심했다. 작은 물건 하나 사기 위해 읍내까지 차를 타고 30분을 가야 했고, 대중교통은 하루 몇 번이 전부였다.
또한 농사에 대한 정보도 TV 속과는 전혀 달랐다. 방송에선 '직접 텃밭을 가꾸며 사는 재미'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방대했다. 작물별 심는 시기, 해충 방제, 토질 관리, 물 조절, 거름 종류… 너무나 복잡하고 낯설었다. 한 번은 잘 자라던 상추밭이 하루아침에 진딧물로 쑥대밭이 되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농약집에 가서 조언을 구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방송에선 보여주지 않는 ‘실패의 과정’이 실제 귀촌의 일상이었다.
게다가 몸이 힘들었다. 도시에서는 운동 삼아 걷던 게 전부였는데, 시골에선 삽질, 제초, 운반, 정리 등 육체노동의 연속이었다. 겨울에는 보일러가 자주 말썽이었고, 수도관이 얼어 아침에 찬물로 세수한 날도 많았다. 방송에서는 그런 불편함을 다소 낭만적으로 포장했지만, 막상 그 속에 들어가 보니 감성은 현실의 무게 앞에서 사치가 되기 쉽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됐다.
관계의 거리감, 방송 속 따뜻한 시골은 일부일 뿐
귀촌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마을 어르신들과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 이웃이 김치며 고구마를 나눠주는 따뜻한 장면들이다. 이런 장면들은 ‘시골 = 정 많은 공동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기대를 안고 마을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시골의 인간관계는 훨씬 복잡했고, 거리감은 예상보다 컸다.
시골 사회는 이미 형성된 관계망이 단단하다. 대부분이 같은 학교, 같은 마을 출신이며, 심지어 가족끼리 얽혀 있는 경우도 많다. 그 사이에 외지인이 끼어들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나는 마을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경로당 청소나 마을 대청소에도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인식은 ‘열심히 하는 외지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까워지려는 마음이 오히려 경계심을 부르기도 했다.
한 번은 마을 어르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조용히 지내면 돼.” 그 말이 처음엔 섭섭했지만, 나중엔 이해가 됐다. 시골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식과 속도를 중시한다. 급작스럽게 다가오면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방송에선 그 부분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따뜻함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따뜻함이 나를 향하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더불어, 방송에서는 ‘함께 사는 기쁨’에 초점을 맞추지만, 실제 귀촌 생활은 대부분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도시처럼 친구를 사귀거나 동네 커뮤니티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외로움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고, 깊다. 그 고립감을 버틸 수 있는 정신력도 필요하다. 방송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현실에서는 매우 강력한 감정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다시 균형을 잡기까지
귀촌을 선택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곳에서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계절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살고 있다. 새벽의 고요함, 빗소리, 쏟아지는 별빛은 분명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선물이다. 하지만 그 선물을 받기까지 감당해야 할 불편함과 고생은 방송 속에선 절대 알 수 없다.
귀촌은 결국 현실이다. 자급자족이라는 단어는 멋지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체력, 지식, 자금은 생각보다 크다. 낭만적인 집 수리도 막상 해보면 공사비와 자재비가 만만치 않고, 전문가 없이 진행하면 위험하기까지 하다. 소소한 장면들 속엔 수많은 노동과 좌절이 숨어 있다. 방송은 그것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편집된 화면, 밝은 조명, 배경음악 아래엔 숨겨진 힘겨움이 존재하며, 그것이 진짜 귀촌의 민낯이다.
나는 이제 귀촌을 처음 결심했던 그때보다 훨씬 더 냉정하게 이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방송은 누군가의 귀촌이 ‘성공’했다는 결과만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이면엔 수많은 시행착오와 포기가 존재하고, 그 실패들을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귀촌을 꿈꾸는 사람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TV 속 귀촌은 ‘하이라이트’일 뿐이고, 현실은 ‘풀 영상’이라는 것을. 그 영상엔 정지 버튼도 없고, 자막도 없다.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그 전편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면, TV보다 훨씬 더 값진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