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시골 집 샀다가 후회한 이유 – 절대 몰랐던 복병들
시골 집, 왜 나는 후회하게 됐을까?
퇴직 후,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보던 회색 도시가 더 이상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영상 속 푸른 텃밭과 고요한 나무 그늘이 마음을 자꾸 당겼다.
언젠가 그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번엔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쉬면서 살자’는 마음으로 귀촌을 준비했다. 그렇게 부동산을 둘러보던 중, 인근 군 지역에 있는 시골집 매물이 눈에 들어왔다. 대지 약 250평, 단독주택과 창고 포함, 가격은 서울 아파트 보증금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육안으로 봤을 땐 집도 멀쩡했고, 마당도 넓었고, 주변 이웃도 조용해 보였다. 중개사는 "즉시 입주 가능하다"고 말했고, 나는 더 알아보지 않고 계약서를 썼다. 그 당시 나는 싸게 샀다는 만족감에 취해 '혹시 모를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수도 상태, 지붕 구조, 단열 상태, 전기 배선 상태 등은 신경 쓰지 않았고, 전문가 점검도 생략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싸게 집을 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값비싼 수리를 등에 업은 셈이었다.
겉은 멀쩡한데, 안은 썩어 있었다
입주하고 첫 한 달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이상한 냄새가 집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곧 벽지 뒤에서 곰팡이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습기가 창틀을 타고 바닥까지 번졌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걸 보고 지붕을 확인해보니,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은 갈라지고 부식되어 있었다. 가장 큰 충격은 배관이었다. 싱크대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확인해보니 하수관이 완전히 막혀 있었고, 정화조는 오래된 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 있어 역류가 반복되었다. 화장실에서는 악취가 끊이지 않았고, 비가 오면 빗물이 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전문가에게 진단을 의뢰하자 지붕 교체, 내부 방수, 배관 전체 교체, 단열 보강 공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예상 견적은 약 3,000만 원이었다. 나는 싸게 샀다고 생각했던 집이, 실상은 '겉만 멀쩡한 폐가'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외형에만 집중했던 내 판단은 철저한 실패였다.
기본이 사라지면 삶도 흔들린다
도시에서는 별 생각 없이 누리던 ‘기본적인 생활 조건’들이 시골에서는 모두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전기 문제였다. 집 안 전선은 오래되어 누전이 자주 발생했고, 한밤중에 차단기가 내려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기기사를 부르려면 읍내까지 연락해야 했고, 출장만으로 하루를 허비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터넷은 더 심각했다. 광케이블이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라 LTE 라우터를 썼는데, 신호가 약해 화상통화나 영상 재생은 거의 불가능했다. 도시에서라면 1초면 끝날 일들이 시골에서는 하루를 잡아먹는 일이 됐다. 냉난방 문제도 고통스러웠다. 여름에는 창문형 에어컨조차 설치가 어려웠고, 겨울엔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해야 했다. 하지만 기름값은 생각보다 비쌌고, 한 달에 40만 원이 넘는 난방비가 부담스러웠다. 전기난로를 사용하면 전력 과부하로 차단기가 내려가고, 그조차도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물도 항상 깨끗하진 않았다. 계곡수를 끌어오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여름에는 탁수가 섞이거나 이물질이 나오는 날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나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보다 ‘문명과 멀어진 삶’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고립감과 정서적 외로움
생활의 불편함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건 ‘외로움’이었다. 처음엔 조용한 환경이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조용함이 나를 침묵 속에 가두었다. 마을에는 나보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고령의 어르신들이었다. 대화 주제가 달랐고, 생활 방식도 달랐다. 처음 몇 번은 마을회관 행사에 참석했지만, 내가 빠졌던 날 이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나도 모르게 '외지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인사조차 어색해졌다. 동네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훑어보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거리감은 더 커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말수도 줄고, 감정 표현이 점점 무뎌졌다. 가족과 친구들은 도시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기에 도움을 청하거나 자주 소통하기 어려웠다. 도시에서는 외로움이 선택이었지만, 시골에서는 강제적 고립처럼 다가왔다. 시골살이는 단지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정서적인 변화까지 요구하는 삶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마음이 병들어가는 느낌은 정말 무서웠다.
결국 도시로 돌아오며 얻은 교훈
나는 1년 4개월 만에 도시로 돌아왔다. 시골집을 팔고 나올 땐 처음 샀던 금액보다 더 싸게 내놓아야 했고, 수리비까지 고려하면 금전적으로는 확실한 손해였다. 하지만 금전적 손해보다 더 아까웠던 건 그 시간과 마음의 소모였다. 시골에서의 삶은 누구나 해볼 수 있지만, 아무나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환경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서적 고립과 공동체 내에서의 거리감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환경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귀촌은 '싸게 산다'는 기준이 아니라, '살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집의 구조, 설비, 인프라뿐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 긴급 상황 시 대처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제대로 된 결정이 가능하다. 나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 덕분에 삶에 대한 기준이 생겼고, 지금은 도시에서 다시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 실패 덕분에, 이제는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다시 도시로 돌아왔지만, 이번엔 도망이 아닌, 내 자리에 돌아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