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할 때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진실
‘조용한 삶’이 전부는 아니다
귀촌을 결심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조용하게 살고 싶어서.” 복잡한 도시, 치열한 경쟁, 시끄러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는다. 나 역시 그랬다. 도시에선 늘 무언가를 쫓기듯 살았고, 아파트 창문 너머로 보이는 회색 건물들 사이에서 숨이 막히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자연 속에서의 느긋한 삶이 간절했다.
하지만 귀촌이 단지 ‘조용한 삶’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조용함 속에는 고립도 있고, 불편도 있다. 서울에서는 5분이면 갈 수 있는 편의점이 시골에서는 차로 20분 거리다. 갑자기 아플 때 문 열려 있는 병원이 없을 수도 있고, 택배나 배달이 아예 안 되는 지역도 많다. 생각보다 자잘한 불편들이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처음엔 그런 불편도 “이 정도는 괜찮지”라며 감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이 누적되면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조용함’은 선택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는 그것 하나만 보고 귀촌을 결심했다가 여러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도시에서 느꼈던 피로가 다른 형태로 바뀌어 다시 돌아온 셈이다. 조용한 삶을 꿈꾸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귀촌이 더 힘들 수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그 속의 생활은 생각보다 단단한 현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은 예상보다 크다
귀촌을 고민할 때, 사람들은 보통 자연환경이나 생활비, 집값, 텃밭 같은 물리적인 요소만 따진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관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도시에서는 모르는 이들과 스치듯 살아가는 게 당연했지만, 시골은 다르다. 마을 단위로 움직이는 생활문화가 있다. 누가 언제 이사 왔는지, 어디 사는 누구의 친척인지, 어느 밭이 누구네 것인지…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
나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은 그 연결망 바깥에서 시작한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인사를 건네지만, 실질적인 거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특히 작은 마을일수록 외부인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나는 몇 달간 마을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고, 장날마다 얼굴을 비췄지만, 여전히 ‘누구네’로 불리지 못했다. 그런 이름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외롭고 공허했다.
또 하나 간과했던 건, ‘말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도시에선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털어놓을 수 있었고, 회사를 통해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다. 시골은 그런 기회 자체가 드물다. 마음을 나눌 사람 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가면, 아무리 풍경이 아름다워도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결국 나는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도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귀촌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관계의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는 일이다. 어떤 마을로 갈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귀촌 준비를 할 때 이 부분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조용함을 넘어서 고립과 단절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
‘살 수는 있다’와 ‘살아간다’는 다르다
귀촌을 고민할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시골은 돈이 많이 안 들어.” 틀린 말은 아니다. 아파트 전세금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집을 구할 수 있고, 자급자족을 한다면 식비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 생존 비용’일 뿐이다. 문제는, 그곳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골집을 구입하는 데 전 재산의 절반을 썼다. 나머지로 생활하면서 블로그 수익이나 소소한 농작물 판매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예기치 못한 지출이었다. 보일러 고장, 수도 동파, 낡은 전선 교체, 각종 수리 비용들이 예상보다 자주 발생했다. 게다가 농기구나 차량 유지비까지 더해지니, 생활비는 빠르게 바닥났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수익 구조’였다. 도시에서는 회사라는 고정 수입이 있었기에 생활의 불안정함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어떤 수입도 정기적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자급자족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소소하게 키운 작물은 시장에서 제대로 가격을 받기 어려웠다. 수익은 없는데 지출은 계속되니, 결국 적금까지 깨야 했다. ‘살 수는 있지만, 살아가기 어렵다’는 말이 점점 실감났다.
귀촌은 단순히 비용을 아끼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구조를 설계해야 하는 과정이다. 자신에게 맞는 수익 모델이 없거나, 수입이 일정치 않다면 귀촌은 곧 생존의 문제로 바뀐다. 나는 그것을 경험했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도시로 다시 돌아왔다. 귀촌을 준비한다면, ‘집 구입’보다 먼저 ‘수익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오래 살아갈 수 있다.
귀촌은 새로운 ‘삶 전체’의 재설계다
귀촌은 단순한 거주지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전환, 일상의 구조, 인간관계, 경제 흐름까지 전부를 다시 짜는 작업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귀촌을 ‘장소의 변화’ 정도로만 생각한다. 도시에서 힘들었던 이유를 시골로 옮기면 해결될 거라 믿는다. 하지만 환경만 바뀐다고 삶이 나아지진 않는다.
나는 도시에서의 피로를 ‘장소’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그 피로를 벗어나기 위해 귀촌을 선택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피로의 본질은 환경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있었다는 걸. 귀촌은 단순히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 결단 없이 내려오면, 결국 시골에서도 똑같이 지치고 만다.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귀촌은 로망이 아니라 설계다. 정서적 이유만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며,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수입, 인간관계, 건강, 생활 패턴—를 새롭게 계획하고 조율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나처럼 ‘괜찮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으로 출발하면, 결국 다시 돌아오는 길 위에 서게 될 수도 있다.
마무리하며..
귀촌은 분명 아름다운 선택일 수 있다. 자연, 여유, 그리고 자율적인 삶. 하지만 그 이면엔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현실들이 숨어 있다. 조용함은 고립으로 바뀔 수 있고, 저렴한 생활비는 수익 부재로 이어질 수 있으며, 사람의 온기가 없는 곳에서는 삶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 귀촌을 꿈꾸는 누구든,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이 진실들을 먼저 마주하고 나서 계획을 세우길 바란다. 그게 진짜 ‘성공하는 귀촌’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