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실패 이유 TOP 5 – 내가 직접 겪은 현실 이야기
낭만에 속았다 – '자연 속 삶'은 현실과 다르다
서울 생활에 지쳐가던 어느 날, 유튜브 속 조용한 시골 풍경이 눈에 오래 남았다.
"저런 데서 살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농담처럼 시작됐지만, 점점 진지해졌다. SNS와 유튜브에는 예쁜 텃밭과 나무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는 브이로그들이 넘쳐났고, 나는 그 낭만을 현실로 옮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실제로 처음 몇 주는 정말 행복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들리는 새소리, 안개 자욱한 시냇가, 손으로 흙을 만지며 감자를 심던 시간까지. 그 모든 순간이 ‘이게 진짜 삶이구나’ 싶은 감동을 줬다.
하지만 며칠 만에 내 손톱 아래엔 흙이 가득 차 있었고, 하루가 끝나면 팔에 쥐가 날 정도로 일에 지쳐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상상했던 고요한 삶은, 실제로는 쉼이 아니라 끊임없는 움직임이었다.
봄이 되자마자 마당에 잡초가 쑥쑥 자라나기 시작했고, 매일 뽑아도 끝이 없었다. 여름엔 모기와 벌레, 장마철엔 집 주변이 진흙탕이 됐고, 나무에선 매미보다 더 시끄러운 벌레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을엔 낙엽 치우기 전쟁, 겨울엔 보일러 고장에 눈 치우기까지 사계절 내내 일이 끊이질 않았다. 연탄을 나르다 허리를 삐끗한 날, 지붕 수리하다 미끄러져 발목을 접질렀던 날도 있었다. 결국 시골은 ‘느긋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부지런해야 겨우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귀촌이 주는 낭만은 순간이고, 현실은 반복되는 육체노동과 예상치 못한 변수의 연속이었다.
불편함을 과소평가했다 – 인프라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귀촌을 하기 전, 나는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택배가 하루 이틀 늦게 오는 것쯤, 인터넷이 조금 느린 것쯤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산 마을은 읍내와도 거리가 꽤 있었고, 가장 가까운 마트는 차로 40분. 눈이 오거나 비가 많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 외출 자체가 불가능했다.
택배는 마을 입구까지밖에 안 오기 때문에 매번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받아야 했고, 주소가 네비게이션에 잘 안 떠 기사와 통화하며 길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터넷은 광랜이 안 들어오는 지역이라 LTE 무선 라우터를 설치했는데, 신호가 약해 영상 하나 재생하는 데도 버벅거렸다. IPTV는 포기했고, 넷플릭스 대신 책을 읽어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정보와 서비스로부터의 단절이었다.
문제는 고장 났을 때였다. 보일러 고장은 2주 넘게 방치됐고, 수도관이 동파돼 물이 끊겼을 땐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써야 했다. 전기차 충전은 불가능했고, 도로가 포장되지 않아 차체가 망가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러한 반복된 생활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빠르게 정신적인 피로로 이어졌다.
인간관계가 힘들었다 – 외지인에 대한 벽은 높았다
귀촌을 준비할 때 가장 걱정하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인간관계였다. 나 자신이 사교적인 성격이고,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골 마을의 관계는 도시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마을 사람들끼리는 서로 이름도, 가족사도, 집안 사정까지도 훤히 알고 있었다. 그 속에 내가 들어가기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외지인’이라는 타이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마을 청소에 한 번 불참했더니 이후 회관 모임에서 나만 말을 안 걸어오는 분위기를 경험했다. 작물 재배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올랐고, 택배가 자주 오는 것도 이상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친해지기보단 감시받는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나 역시 점점 말을 아끼게 됐고, 결국에는 모임이나 행사에도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시골의 공동체 문화는 외로움보다 더 깊은 고립감을 안겨주었다. ‘정이 많은 곳’이라는 말은 맞았지만, 그 정은 ‘자기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정이었다.
경제적인 착각 – 비용은 생각보다 많이 든다
귀촌하면 돈을 아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서울 아파트 월세 80만 원을 생각하면, 집을 소유하고 사는 시골살이는 훨씬 경제적일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처음 집을 사고 리모델링에 2,000만 원 넘게 들어갔고, 이후에도 공사비는 계속 불어났다. 낡은 보일러는 교체에 150만 원, 화장실 방수 공사 200만 원, 창문 단열 리폼 100만 원 등 생각지 못한 지출이 줄줄이 이어졌다.
게다가 겨울엔 난방유 값이 계속 올라 한 달에 40~50만 원이 소요되었고, 여름엔 전기세가 크게 나왔다. 수도관은 종종 얼어붙어 수리 기사 출장비까지 부담해야 했다. 마을에는 대중교통이 없어 자가용 유지비, 보험료, 기름값 등도 모두 고정비로 들어갔다. 도시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배달로 해결하던 소비가 시골에서는 ‘모든 걸 직접 차를 타고’ 해결해야 했다. 장보러 나갔다가 왕복 2시간 이상이 걸리고, 병원 진료만 보러 가도 하루가 다 갔다. 이런 시간 비용도 결국 나에겐 '숨은 지출'이었다.
고립된 삶에서 오는 심리적 피로감
귀촌 후 몇 달이 지나면서 나는 고요한 자연보다 내 마음속의 고립감과 더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평화로움이 참 좋았지만, 사람 소리보다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 벌레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생활이 이어지자 점점 불안해졌다. 특히 날씨가 흐린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면, 더 깊은 침묵이 집 안을 감쌌다.
말을 하지 않는 날이 며칠씩 이어졌고, 웃을 일이 거의 없었다. 이웃과 마주쳐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고,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SNS로 사람들과 연결되려고 했지만, 결국 ‘나는 여기 혼자구나’라는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심리적으로 힘든 날, 감정을 나눌 상대가 없다는 건 매우 큰 고통이었다. 도시에서는 카페에라도 가서 사람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시골에서는 나가는 것조차 의미가 없었다. 조용한 풍경이 어느새 감정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결국 ‘귀촌’이 나에게 준 건 여유보다 '감정적으로 버텨야 하는 삶'이었고, 그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내가 겪은 귀촌 실패의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낭만에 대한 과신, 생활 인프라의 부족, 관계에서의 고립, 경제적 착각, 심리적 외로움까지. 각각이 쌓여 ‘실패’라는 결과를 만들었고, 나는 1년 만에 도시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떤 환경이 나에게 맞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촌은 감성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철저한 준비와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먼저였어야 했다. 이 글이 귀촌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현실적인 기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