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후 마을 회관 참석 거부했다가 생긴 오해와 불이익
사소한 선택, 낯선 거리감의 시작
귀촌을 결심했을 때 나는 단순히 ‘조용한 동네’에 살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다. 도시의 고층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층간소음, 새벽까지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 복잡한 회의와 마감 속에서 하루를 쫓기듯 살아가던 내 삶은 어느새 지쳐 있었다.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적어도 시골에서는 내가 선택한 속도로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그렇게 도시의 짐을 내려놓고, 외곽의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밤이면 별이 보이는 마당에서 혼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삶. 하지만 곧 작고 보이지 않는 벽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을회관 회의’였다. 처음 들었을 땐, 그냥 동네 어르신들끼리 자율적으로 모이는 자리가 아닐까 싶었다. 나는 초대받은 적도 없었고, 강제성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회의 참석을 미뤘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보다 큰 파장을 낳게 될 줄은 몰랐다.
말하지 않아 생긴 오해,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경계
회의에 두세 번 빠졌을 뿐인데, 어느 날부터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졌다. 평소처럼 인사를 건넸는데, 고개를 돌리거나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반복됐다. 처음엔 내가 예민한 걸까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텃밭을 정리하고 있던 내게 한 어르신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회의도 안 나오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단번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회의에 안 나오는 무례한 외지인’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던 것이다.
시골은 도시보다 훨씬 더 공동체 중심으로 움직이는 곳이었다. 회의란 단순히 행정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마을의 일원으로서 얼굴을 비추고 인사를 나누며 관계를 맺는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그런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스스로 공동체의 울타리 바깥으로 걸어 나간 셈이었다. 그게 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배제와 고립 – 회의 불참이 만든 연쇄적인 단절
그 뒤로 나는 작은 불이익들을 하나씩 체감하기 시작했다. 마을 도로 보수 일정이나 정전 안내 등 생활에 밀접한 공지들이 내게만 전달되지 않았다. 동네 방송에서도 내 이름은 빠졌고, 마을 단체 문자에도 등록되지 않은 것 같았다. 불편함이 쌓일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단순했다. “회의 안 나오니까, 뭐 알 수가 없지.” 그 말은 단호했고, 동시에 무력하게 들렸다.
이런 고립은 정보 부족에서 끝나지 않았다. 마을 공동 자재 신청 기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적도 있었다. 누군가는 트럭으로 쌀을 대량 구매했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알아보려 했지만, 이미 마감된 상태였다. “회의에서 이야기 나왔는데 못 들었구나”라는 반응이 돌아왔고, 나는 다시금 ‘빠진 사람’이라는 현실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를 향한 눈빛은 미묘하게 멀어져 있었다.
심지어 동네 청소 날에도 나에게만 연락이 오지 않았고, 어느 날은 이웃집이 집 앞 배수로를 함께 정리하는데도 내 구역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반복적이었고, 그 안에는 조용한 ‘응징’의 기류가 느껴졌다. 누가 나를 대놓고 비난하거나 소외시키진 않았지만, 그런 식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더 강하게 와닿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외지인’이라는 레이블은 내 모든 일상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마을 안의 외로움 – 관계란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을, 나는 시골에 와서 처음 실감했다. 도시에서는 익명의 관계 속에서도 카페 음악, 출근길의 인파, 아파트 입구에서 스치는 인사 한마디가 일종의 ‘사회적 연결’이었다. 하지만 시골은 달랐다. 관계가 없으면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일상 속 모든 정보와 정서적 안정감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를 통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부러 외출 시간을 마을 사람들과 어긋나게 맞췄다. 정해진 시간에 나가면 마주치게 되니까. 텃밭 일도 해가 질 무렵 혼자 조용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거리를 두면서 점점 더 외로워졌고, 더더욱 관계 형성이 어려워졌다. 조용한 삶을 원했지만, 그 조용함이 곧 침묵이 되고, 침묵은 오해로 번져 결국 단절로 이어졌다.
결정적인 순간은 작은 갈등에서 터져 나왔다. 마을 축제 준비를 한다며 이웃들이 모이던 날, 나에겐 그 사실조차 전달되지 않았다. 지나가던 어르신이 “아직도 회의 안 나오나 봐”라고 한마디 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시골의 공동체는 말하지 않아도 의사표현이 되는 곳이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아서 더 큰 벽이 생기는 곳이라는 사실을.
회관은 공간이 아니라 태도의 시작이었다
이후 나는 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치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회의가 끝난 후 몇몇 분들이 “이제 나오네”라고 말을 건넸다. 그 짧은 문장이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안도감을 줬다. 나의 존재를 알아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몇 달 뒤, 텃밭 옆을 지나던 어르신이 말을 걸어왔다. “첨엔 정 붙이기 힘들 줄 알았지. 혼자 있으니까 우리 싫어하는 줄 알았어.” 그 말은 단순했지만, 내가 그동안 왜 그렇게 외로웠는지를 설명해주는 열쇠 같았다. 나는 시골 사람들과 섞이지 않으려 한 게 아니라, 그저 도시식의 거리두기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내려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거리두기를 ‘무관심’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었다.
마을회관 회의는 결국 공간이 아니라, 태도의 시작이었다. 시골에서 정착하려는 사람에게 이 회의는 단순한 행정이 아니라, 공동체와의 첫 접점이다. 나도 이제는 회의 일정을 달력에 표시해두고, 참석이 어려운 날에는 미리 이웃에게 전한다. 그렇게 작은 신호들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내 자리를 찾아갔다.
마무리하며…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골은 그저 조용하고 여유로운 곳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의 밀도’가 도시보다 훨씬 진한 곳이다. 때로는 침묵이 무례가 되고, 거리가 벽이 되며, 단절이 스스로 만든 외로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선, 먼저 한 걸음 다가가야 한다.
마을회관에 나가는 일은 귀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소한 선택 하나가 시골에서의 삶 전체에 커다란 파장을 만들 수 있다. 내 삶을 조용하고 따뜻하게 가꾸고 싶다면, 먼저 내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관계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작은 시작이, 진짜 귀촌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