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했는데 나 혼자 외지인 – 이방인의 삶
따뜻할 줄 알았던 시골, 그곳에서 나는 ‘낯선 사람’이었다
도시에서의 삶이 점점 피곤하게 느껴졌던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시골로 가야겠다.” 복잡한 인간관계, 끝없이 치솟는 생활비, 가속화되는 속도전 같은 하루하루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귀촌’이었다.
귀촌을 앞두고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시골의 따뜻한 인심,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을 이장님이 반갑게 맞아주고, 이웃들이 김장을 나누며 웃는 풍경, 그런 따뜻한 공동체의 한 자리에 내가 있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 누군가 인사하면 좋겠다는 생각과 달리, 지나가는 이웃들은 나를 스치듯 바라볼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어떤 날은 담벼락 너머에서 “누구래?” “도시서 내려왔다더라”는 속삭임이 들리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는 단순한 이사 온 사람이 아니라, ‘외지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방인이라는 것을.
그 후로 내 일상은 작은 벽들과 마주하는 연속이었다. 반찬을 나눠주려 해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 마을 행사에 참여해도 중심에서 살짝 비켜난 자리, ‘그냥 조용히 살자’고 다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는 소속되지 못한 외로움이 자꾸만 쌓여갔다.
보이지 않는 경계선 – 공동체와 나를 가르는 투명한 벽
시골 마을은 수십 년, 길게는 몇 세대에 걸쳐 관계가 형성된 공동체다. 이런 곳에서의 인간관계는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끈으로 얽혀있으며, 마치 오래된 가족처럼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 특히 혼자 귀촌한 도시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 바깥에 위치하게 된다.
나는 처음에 그런 구분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어차피 사람은 사람이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마음도 열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몇 달은 나름의 노력을 했다. 마을 회관에 인사를 드리고, 농사일 돕는 자리에 따라가고, 장날이면 일부러 사람들과 눈 마주치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하거나, 그저 무관심한 태도였다.
물론 모두가 차갑게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이웃은 말을 걸어주기도 했고, 조용히 다가와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일회성 친절’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치 ‘시골 사람답게 인사는 하지만, 선을 넘지는 말자’는 태도가 느껴졌다. 공동체의 벽은 그렇게 보이지 않게 존재했고, 나는 늘 그 바깥에서 서성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내가 외지인이라는 사실이 끊임없이 상기되는 순간들이었다. 마을 회의에서 내 의견은 늘 마지막에 들리는 척 하거나 무시당했고, 주소지 변경조차 “그렇게 빨리 하지 않아도 된다”며 미루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치 ‘정착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무언의 평가 기간을 통과해야만 진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구조처럼 느껴졌다.
나만 낯설고, 나만 외로운 – ‘정서적 단절’의 깊은 골짜기
정서적으로 가장 큰 충격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방인의 껍질을 벗지 못한다는 자각이었다. 도시에서는 새로운 이웃이 생기면 오히려 반갑고, 종종 커피 한 잔 나누며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새로운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위험’일 수도 있었다. 이들에게 나는 잠시 머물다 떠날지도 모를, 또는 자기 방식대로 마을에 변화를 주려는 불청객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점점 말을 줄이게 되었고, 일부러 외출 시간을 마을 사람들과 어긋나게 조절하게 되었다. 농사일을 배우고 싶어도 누구에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든 반찬은 냉장고에 쌓여만 갔다. 이 모든 상황이 ‘나는 이 마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감정을 더욱 강화시켰다.
심리적으로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주말만 되면 친구들과 어울리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이제는 연락조차 줄어들었다. 사람들에게 ‘귀촌했다’고 말하면 다들 “좋겠다”, “부럽다”고 말하지만, 그 뒤에 이어질 수 있는 외로움과 고립감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도시에서의 단절을 피해 시골로 왔지만, 이곳에서도 또 다른 단절 속에 갇혀버린 셈이었다.
이런 상황은 수면, 식사, 생활 리듬에도 영향을 줬다. 불면증, 무기력증, 체중 감소. 몸과 마음은 하나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도시로 돌아가야 하나’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 누구도 명확히 나를 배척하지 않았지만, ‘무관심이라는 차가운 담장’이 내 삶을 점점 옥죄고 있었다.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법 – 존재를 드러내되, 억지로 섞이지 않기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억지로 공동체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기로. 대신, 내 자리를 내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되, 예의는 지키고, 지나치게 끼어들려 하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같은 시간대에 인사를 하고, 계절이 바뀔 때 작은 인사 카드를 건넸다. 내 존재를 꾸준히, 조용히 알리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외부와 연결되는 채널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SNS로 나의 귀촌 일기를 공유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교류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과는 정기적인 통화 시간을 정했고, 가끔은 도시에 올라가 직접 얼굴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심리적 균형을 찾아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가지는 일이었다. 나는 이 마을에서 평생 살 수도 있고, 언젠가는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이곳에서 의미 있게 살고 있다’는 감각이다. 마을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 방식대로 이 땅과 관계를 맺고 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이방인이라도 괜찮다고,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마을의 중심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과는 계절 인사를 주고받고, 가끔은 마을 일에 조용히 참여하며 ‘겉돌지 않되,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 중립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의 거리감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이방인의 삶은 외롭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도 나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방식은 분명 존재한다.
마무리하며..
귀촌은 단순한 이사나 주거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사회와 문화로 들어가는 하나의 이민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이방인의 외로움은 예상보다 훨씬 깊고 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결국 어느 순간 그곳의 공기와 리듬에 맞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글이 현실적인 참고가 되길 바라며, 무엇보다도 외지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