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살고 싶었다”는 이유로 귀촌하면 안 되는 이유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그래서 시골로 향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늘 ‘소음’과 함께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소리, 새벽까지 울려대는 경적,
층간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끝없이 울리는 휴대폰 알림까지.
매일같이 듣고 겪는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견딜 수 없는 피로로 다가왔다.
나는 조용한 삶을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귀촌이었다.
“이제는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조용한 시골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 단순한 바람 하나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귀촌을 결심하는 가장 흔한 이유도 이것일 것이다.
'고요함', '여유', '정적인 삶'에 대한 동경.
나도 그랬다.
직장을 정리하고, 몇 개월간 귀촌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적당한 가격의 전원주택과 땅을 찾아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짐을 싸서 본격적인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마당이 있는 집, 창문을 열면 산내음이 들어오는 환경,
밤에는 별이 쏟아지고 아침에는 새소리로 눈뜨는 삶.
그게 내가 상상한 '조용한 삶'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 상상은 현실과 달랐다.
상상 속의 시골은 고요했지만,
현실 속의 시골은 의외로 ‘시끄러운 곳’이었다.
진짜 시골은 조용하지 않다 – 오히려 더 ‘시끄러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촌 후 처음 맞이한 새벽은 충격이었다.
해 뜨기 전부터 닭이 울고, 마을 스피커에선
“마을회관에서 긴급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로 시작하는
무선 방송이 골목을 울렸다.
게다가 동이 틀 무렵이면 트랙터와 경운기가 ‘우르릉’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내가 상상했던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새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골은 도시보다 조용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자동차 소음’이나 ‘인파’가 적다는 의미일 뿐이다.
실제 시골은 농기계 소리, 개 짖는 소리, 마을 방송, 제초기 소리, 집 수리하는 망치 소리 등
인위적이고 불규칙한 생활 소음이 오히려 더 크게 울려 퍼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농번기에는 아침 5시부터 이웃이 고추밭에 약을 치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마을 앞 도랑에서는 제초기를 돌리는 소리로 귀가 멍멍해지기도 했다.
심지어 동네 개들끼리 새벽에 짖기 시작하면
30분 넘게 울부짖는 일도 허다하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던 ‘인간과 자연의 혼합된 소음’이
끊임없이 내 일상에 침투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런 생활 소음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그들에겐 ‘일상’이고,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처음 깨달았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귀촌을 하면, 오히려 그 조용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골의 '관계'는 조용하지 않다 – 은둔형 귀촌이 불가능한 이유
귀촌 전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정리하고 싶었다.
도시에선 매일 메신저가 울리고,
회식이며 미팅이며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그냥 혼자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런데, 시골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구조였다.
이웃들과의 관계는 도시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밀접했다.
처음엔 따뜻하게 느껴졌지만,
점차 그것이 부담과 스트레스로 변해갔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오전 9시에 밭일을 하고 있는데
이웃 어르신이 불쑥 다가와 이런 말을 건넨다.
“어이~ 새댁! 고추는 그렇게 심는 거 아니여~”
그리고는 본인 방식대로 삽을 들어 나무를 옮겨 심는다.
정중히 사양해도, “아녀, 나는 이런 거 해주는 게 좋아서 그래”라며
마치 본인의 땅처럼 농사일을 간섭하신다.
또한 명절이나 동네 잔치, 노인회 행사, 공동 작업, 쓰레기 정리 등
참여하지 않으면 ‘예의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을의 암묵적 규칙이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혼자 살고 싶었지만,
그 바람은 ‘외부인을 경계하는 분위기’ 속에서 점점 지워졌다.
한 번은 마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웃이 대놓고 “이 동네 정 안 붙이나 봐?”라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그저 관여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지만
시골에선 그것이 ‘사람을 무시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조용한 삶을 원해 왔지만,
시골은 예상보다 훨씬 더 관계 중심적이고 간섭이 많은 사회였다.
도시에서의 단절이 힘들었다면,
시골에선 그 단절을 선택할 수조차 없었다.
‘고요한 삶’은 장소가 아니라 방식에서 나온다
귀촌이 잘못된 선택이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기대가 잘못된 건 분명했다.
나는 장소만 바꾸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도시의 소음과 인간관계를 버리면
자연스럽게 평온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고요한 삶은 장소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 오는 것이었다.
시골로 간다고 삶이 고요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는 더 많은 변수와 마찰,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았던 형태의 소음’들이 기다리고 있다.
진짜 조용한 삶을 원한다면,
그건 오히려 도시 속에서도 내 방식대로 거리를 두고, 선택을 하고, 단순하게 사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나는 결국 귀촌 2년 만에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이제는 도시에 살면서도
필요 없는 인간관계는 줄이고,
하루 한 번은 휴대폰을 꺼두며,
주말에는 조용한 산책길을 걷는 시간을 만든다.
예전처럼 시끄럽지 않은 삶이 가능하다.
장소가 바뀐 게 아니라
내가 조용함을 만드는 방법을 배운 것뿐이다.
마무리하며.. 귀촌을 고민 중인 당신에게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서…”
이 이유 하나만으로 귀촌을 생각하고 있다면,
한 번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시길 권한다.
시골은 조용한 공간이 아니다.
그저 도시의 소음이 다른 종류로 바뀐 것뿐이다.
때로는 더 거칠고, 더 반복적이며, 더 고립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시골은 철저히 공동체 중심적인 사회다.
혼자만의 고요한 삶을 꿈꾼다면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바람, 그 자체는 아름답다.
하지만 그 바람을 실현할 장소로 무턱대고 시골을 선택하는 건 위험하다.
조용한 삶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부의 정리, 삶의 재구성, 관계의 조율, 기술적 도구와 심리적 전략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