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과 귀촌은 완전히 다르다.. 착각에서 시작된 실패
주말농장으로 시작된 로망 – ‘이런 삶을 살고 싶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본다.
‘작은 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우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
나 역시 그랬다.
회사 생활로 지친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서울 근교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10평 남짓한 텃밭에 상추, 방울토마토, 고추, 열무 등을 심고
주말마다 손에 장갑을 끼고 흙을 만졌다.
햇살 아래에서 구부정하게 일하면서도,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수확의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작은 상추 몇 장에도 뿌듯함이 느껴졌고,
저녁 식탁에 “이거 내가 키운 거야”라고 자랑하는 순간,
도시에서 느낄 수 없던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점점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이렇게 행복한데, 아예 시골로 내려가서 살아보면 어떨까?’
‘주말농장 말고, 진짜 농사 지으면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
이 작은 취미가 어느새 인생 계획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귀촌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 결심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착각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실은 전혀 달랐다 – 힐링은커녕 생존의 전쟁터
귀촌 초기, 모든 게 신선하고 새로웠다.
새벽이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마당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꽃들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조용한 아침과 넓은 하늘,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이제 진짜 삶을 시작했구나'라는 착각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짧은 착시일 뿐이었다.
도시에서 ‘잠시 나들이’처럼 다녀오던 주말농장과는 전혀 달랐다.
귀촌의 현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생존이었다.
주말농장에선 시간과 기분이 허락할 때만 밭에 나가면 됐지만,
귀촌 후의 농사에는 날씨, 해충, 습도, 비료, 병충해, 인건비, 유통 경로 등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얽혀 있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주말농장에선 “아, 오늘 못 가겠네”라고 생각하고 그만두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귀촌 농사는 다르다.
비가 오기 전 비닐멀칭을 해야 하고, 배수로를 미리 정비하지 않으면 작물이 썩는다.
태풍이 예보되면 한밤중에라도 나가서 지지대를 세워야 하고,
자고 일어났더니 멧돼지가 작물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날도 있다.
무엇보다, 주말농장은 ‘놀이터’였지만,
귀촌의 밭은 ‘수익을 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 땅이 내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수확량이 부족하거나 팔 데가 없으면 곧바로 적자로 이어졌다.
'내가 먹으려고 키우는 작물'과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 작물'은
관리 방식부터, 접근법, 그리고 긴장감 자체가 다르다.
주말농장에선 몰랐던 수많은 현실적인 변수들이
귀촌 후에는 내 책임으로 쏟아졌다.
주말농장은 놀이였고, 귀촌은 사업이었다
가장 뼈아프게 느꼈던 건,
주말농장은 취미였지만, 귀촌 농사는 ‘사업’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농사를 지으면 수확이 있고,
수확이 있으면 판로가 있고,
판로가 있으면 수익이 생겨야 한다.
이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생산 → 유통 → 판매 → 고객관리까지 포함된
사업의 전 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작물만 잘 키우면 팔릴 것’이라 믿었고,
유통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농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도매시장에 내놨지만,
모양이나 크기가 기준보다 조금만 벗어나면 전량 폐기되거나 헐값에 팔렸다.
SNS를 활용한 직거래를 시도했지만,
팔로워도 브랜드도 없으니 전환율은 낮았다.
택배비, 포장비, 손실률까지 고려하면
판매할수록 손해가 났다.
그러다 보니 이웃 농가와 가격 경쟁을 하게 되고,
결국 수익이 아니라 생존이 문제였다.
처음 귀촌하면서 품었던 “마음이 편안한 농촌 생활”은
이제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생계형 농업”으로 변해 있었다.
반면 주말농장에선
작물이 병들면 “어쩔 수 없지”라며 웃어넘길 수 있었고,
지인들과 수확한 걸 나눠먹으며 “괜찮네”라는 말로 기뻐했다.
거긴 실패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귀촌은 달랐다.
실패는 곧 돈의 손실이었고,
다음 작기(作期)까지는 아무 수입도 없는
정확하고도 잔혹한 손익 구조였다.
이때 나는 진심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주말농장은 놀이였고, 귀촌은 사업이었구나."
“내가 몰랐던 것”들로 가득한 삶, 그리고 현실적인 조언
귀촌 후 가장 자주 떠올린 말은
“이건 내가 몰랐던 거야”였다.
기후, 토질, 지역성, 이웃 농가와의 관계, 마을 회의, 공공지원 사업 등
모든 것이 낯설었고, 예측과 달랐다.
그저 도시에서만 살았던 나는
시골의 느린 행정 처리 속도와,
관습적 인간관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마을 행사’ 등에 적응하지 못했다.
심지어 농기계 수리 하나도 당장 해결되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서 작물은 며칠 사이에 죽어버렸다.
이 모든 걸 겪으며
나는 누군가에게 “귀촌 어때요?”라고 물어보면
이제는 이렇게 대답한다.
“주말농장이 너무 좋아서 귀촌하려는 거라면, 하지 마세요.”
“주말농장은 '마음의 여유'고,
귀촌은 '생활의 생존'이에요.
전혀 다릅니다.”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얼마나 농업을 이해하고 있는가’보다
‘이 지역의 수요, 유통, 인프라, 마을 문화’를
얼마나 조사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 텃밭 10평 가꾸는 것과 1,000평 농지 운영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체력과 운영력이 필요하다.
✔️ 농업은 날씨와 시간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즉흥적 감성으로는 절대 버틸 수 없다.
✔️ 마을 주민과의 관계가 사업 성패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다.
✔️ 실패할 경우, 다시 도시로 돌아갈 안전망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봐야 한다.
마무리하며.. 귀촌을 꿈꾸는 당신에게
귀촌은 정말 매력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냉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잘 준비하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지만,
준비 없이 감성에만 이끌리면
‘돈과 시간과 체력’을 잃고 되돌아오는 실패담이 될 수 있다.
나는 실패했지만,
그 경험은 다음 도전자에게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귀촌을 고민하고 있다면,
주말농장에서 느낀 감정이 ‘삶 전체의 모습’이라고 착각하지 않길 바란다.
주말농장과 귀촌은
‘힐링’과 ‘생존’이라는 완전히 다른 무대다.
무대가 바뀌면 룰도,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그걸 잊지 마시라.